1. 모든 생명체의 시작점 이산화탄소의 역사
이산화탄소는 생태계를 이루는데 없어서는 안될 기초가 되는 시작점이다. 이산화탄소는 햇빛과 물의 광합성을 통해 생물의 조직으로 변환되어 산소을 발생시킨다. 식물에 저장된 탄소는 동물의 먹이가 되어 신체에 흡수되고 그 동물이 죽게되면 다시 생태계로 돌아가 이산화탄소로 모습이 바뀌게 되어 대기와 바다로 돌아가게 된다.
이 탄소 중 일부는 격렬하게 돌아가는 지표면의 순환에서 튕겨 나와 지각 속으로 이동하고, 석회석이나 탄소 함량이 높은 침전물의 형태로 지각 깊은 곳에서 수억 년 동안 잠을 잔다. 땅에 묻히지 않고 지표면에 남은 식물 조직은 동물, 균류, 박테리아의 물질대사라는 불 속에 끌려 들어가 짧은 시간 안에 연소된다.
이 과정에서 지구상의 생명체는 광합성에 의해 생성된 산소의 99.99퍼센트를 소모한다. 극소량의 식물이 암석으로 변형되는 경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생명체는 광합성에 의해 생성된 산소를 전부 소모할 것이다. 그러나 극소량의 식물이 암석으로 변형된 덕분에 지구는 이처 럼 특별한 잉여 산소를 갖게 되었다. 바꿔 말하면 산소가 풍부한 지구의 대기는 지금 살아 있는 숲과 플랑크톤이 제공하는 선물이 아니라, 생명체의 조직에 축적된 이산화탄소가 지구의 오랜 역사에 걸쳐 화석연료의 형태로 지구 지각에 쌓이면서 남긴 선물이다.
1) 생물권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 이산화탄소의 역할
이산화탄소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이루는 기본 물질이고 생명을 부양하는 산소의 간접적인 공급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물질이다. 그런데 이 점잖은 이산화탄소 분자는 지구 전체의 온도와 바다 전체의 화학적 조성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산화탄소의 이런 화학적 작용이 깨지면 생태계가 혼란에 휩싸이고 지구 온도가 요동치고 바다가 산성화 되고 생물이 사멸한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시스템의 모든 구성요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염화불화탄소나 납처럼 규제가 필요한 골치 아픈 산업 오염물질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해양학자 로저 르벨이 1985년에 썼듯이, 이산화탄소는 '생물권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이다.
2)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유지하는 탄소 순환의 과정
생물권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인 이산화탄소는 무심하게 다루어도 되는 물질이 아니다. 이산화탄소는 화산에서 분출되어 대기와 바다로 들어가고 생명의 순환에 개입했다가 다시 암석에 축적되는 이동 과정을 통해 이곳을 지구라는 독특한 행성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을 탄소 순환이라고 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섬세하고 역동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전 지구적 탄소 순환에 의존하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다. 이산화탄소가 화산에서 끊임없이 방출되고 (화산이 1년 동안 방출하는 양은 인간이 배출하는 양의 1퍼센트이다) 지표면에서 살아 있는 유기체 사이를 쉴 새 없이 왕복하는 사이에 지구 시스템은 지표면에서 이산화탄소를 꾸준히 제거해 기후 재앙을 막아낸다.
거대한 산맥의 침식과 탄소를 잔뜩 품은 플랑크톤의 대량 해저 침강 등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되먹임 과정 덕분에 지구는 평형을 유지한다. 지구는 탄생 이후 거의 대부분의 시기에 이런 평형을 유지해 왔다. 우리는 이 세계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믿기 어려울 만큼 경이로운 세계다.
3) 지구의 대멸종은 어떻게 왔는가?
지질학 자료에 따르면, 지구 시스템은 때로는 임계점을 넘어설 만큼 심한 충격을 받기도 한다. 지구 시스템은 충격을 받으면 휘어질 수도 있지만 붕괴할 수도 있다. 지구 역사에서 아주 드물게 발생했던 파국적인 사건들에서 그랬듯이, 탄소 순환 역시 때로는 완전히 교란되고 붕괴되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든다.
이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결과가 바로 대멸종이다. 대륙 크기의 화산이 활동을 시작해 탄소 함유량이 높은 석회암을 불태우고 지하에 묻힌 막대한 양의 석탄과 천연가스에 불을 붙여 분출하는 분화구를 통해, 또는 장기와 빛을 방출하며 광대한 면적을 뒤덮는 이글거리는 현무암 용암을 통해 수조 톤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억 5190만 년 전, 지구에 살던 불운한 생명체들에게 이런 일이 닥쳤고, 지구 생명체 역사상 최악의 대멸종으로 이어졌다. 페름기 말, 이산화탄소 대량 방출에 따른 탄소 순환의 완전한 붕괴로 지구 생명체의 90퍼센트가 치명적인 대가를 치렀다.
4) 대멸종 후 만들어진 화석연료
페름기 말 대멸종기에 시베리아 화산들이 수천 년 동안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면서 복잡한 구조의 생명체를 거의 절멸시켰다. 지구의 모든 지질시대를 통틀어 최악의 충격을 빚어낸 이 사건으로 탄소 순환을 지탱하는 모든 정상적인 안전장치가 무너졌다. 기온이 10도나 치솟았고, 치명적인 수준으로 뜨거워지고 산성화 된 지구 전역의 바다에 점액질의 분홍색 조류가 번성하면서 산소를 고갈시켰다.
산소가 바닥난 바다에는 유독한 황화수소가 가득 찼고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이 바다를 휩쓸었다. 격동의 시대가 끝나고 기온 이 떨어진 직후, 지구에는 나무 한 그루 남지 않았고 지구 전역의 바다에는 산호초 대신 끈적거리는 박테리아 점액이 가득 찼다. 이 시대의 지층에는 화석 기록이 없다. 약 1000만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생물이 번성하면서 지구는 화석 기록을 다시 남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가 쓰는 화석연료도 만들어졌다. 지구화학자들이 암석 분석을 통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지구 역사에서 발생한 모든 대멸종은 전 지구적 탄소 순환의 대붕괴와 관련이 있다. 이산화탄소는 생물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탄소 순환 시스템이 지나친 압박을 받아 평형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면 지구 전체가 파국에 휩쓸릴 수 있다는 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2.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과 지구의 경고
영장류의 한 종인 인간이 수억 년 전 대규모 화산 활동이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이 지구 역사 내내 광합성 생명체가 지각 아래 묻어놓은 막대한 양의 탄소를 끌어낸다면? 탄소를 제멋대로 뿜어냈던 페름기의 거대한 화산과는 달리, 지각 깊은 곳에서 지표면으로 뽑아낸 탄소를 지구 전역의 무수히 많은 내연기관과 용광로에 나눠 넣고 훨씬 더 기품 있게 태우는 방식으로, 페름기 대멸종 시기의 화산보다 열 배 빠른 속도로 탄소를 뿜어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지구에게 이처럼 터무니없는 질문을 들이대며 답을 내놓으라고 조르고 있다.
기후는 정치적 구호에 반응하지 않고 경제 시스템에도 무심하다. 기후는 물리적 법칙만 따른다. 대기 중으로 과다 방출된 이산화탄소가 1억 년에 한 번 일어나는 화산 활동의 결과이건, 생명체 탄생 이후 최초로 일어난 산업 문명의 결과이건, 기후는 개의치 않는다. 어디서 나온 것이든 기후는 똑같이 반응한다. 우리는 암석에서 찾아낸 확실한 경고장, 과거에 일어난 대재앙의 흔적이 아로새겨진 화석 기록을 손에 쥐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그 옛날 대격변으로 치닫는 경로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어쩌면 지구는 참혹했던 과거의 그 시절보다 훨씬 더 강한 회복탄력성으로 탄소 순환의 교란에 대처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구 역사상 최악의 사건의 희생자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길 이유가 없다.
우리가 화석에서 읽어내야 할 경고는, 우리가 지구 시스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에 충격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는 스스로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세계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믿기 어려울 만큼 경이로운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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